일상덕질/삼국지 기타 6

[曺惇] 세상이 멸망하는 날

평상시의 하후돈은 쾌활한 성격의 사람으로, 동료 제장들은 물론 말단 병사에 이르기까지 스스럼없이 대화하며 편안한 분위기를 능숙하게 이끌어내는 능력자였다. 한쪽 눈에 안대를 한 험상궂은 인상이었지만 그 얼굴을 찌푸리는 날 보다는 밝은 표정을 하고 있는 날이 훨씬 많았고, 기분이 좋지 않은 날 보다는 좋은, 혹은 좋으려 노력하는 날이 더 많은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이렇게 식사가 차려진 반상을 앞에 두고 제대로 먹지도 않은 채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는 하후돈을 보는 것은, 기억마저 희미한 어린 시절부터 하후돈을 알고 지내온 조조로서도 매우 생소한 일이었다. "원양?""……네, 승상.""자네 어디 안좋은 곳이라도 있나?""……아닙니다." 미 묘하게 대답도 굼뜨다. 조조는 미심쩍은 눈빛으로 새 모이만큼의 밥..

[曺惇/外] 단문모음

조돈 :: 호롱불을 낮게 켜놓은 위왕의 침전을 지키는 사람은 평소에도 그 침전에 드나듦이 자유로웠던 하후돈 한 사람 뿐이었다. 침전의 밖에는 언제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할 수 있도록 의원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었지만 정작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병상에 누운 위왕과 그 앞의 장수는 언제나처럼 고요했다. "다들 쫓아내고 나니 이제야 좀 조용히 쉴 것 같군.""그래도 의원이나 시비 하나쯤은 가까이 두시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걱정이 가득 묻어있는 하후돈의 말에 조조가 피식, 숨이 새어나오는 듯 웃었다. 병마에 시달려 기력은 없었지만 그런 순간에도 저렇게 웃는 것이 조조답다면 조조다운 일일까. "그래서 자네를 곁에 두지 않나, 원양. 의원보다 내 병을 잘 알고 시비보다 내 몸을 잘 아니까 말이야."..

[諸葛兄第] 만남

공명은 배가 시상의 선착장에 정박하기 전 부터 선실을 나와 갑판 위에 서 있었다. 큰 상선이 드나드는 만큼 항구는 복잡한 활기를 띠고 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융중에서라면 곧장 강하로 내려와 배를 타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었지만 강하의 황조는 강동의 주인과 여전히 창칼을 맞대고 대치중인 상태였다. 결국 먼 길을 돌아 강동 땅에 들어선 공명의 얼굴에는 익숙하지 않은 여행길에 쌓인 여독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공명은 잠시 크게 숨을 내쉬며 선착장을 내려다 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섞여있는 와중에도 반가운 표정을 한 형의 얼굴과 단번에 눈이 마주친 것에 공명의 얼굴에서도 살그머니 긴장이 풀렸다. +++ 「균은 함께 오지 않은 것이냐?」「아무래도 아직까지 형님이 어려운 모양입니다.」 저택으로 향하는 마차 안에서..

[瑜策/外] 단문모음

瑜策 :: 미지근한 바람이 강가의 갈대를 스치고 낮게 불어왔다. 더 이상 문상을 올 사람도 없는 늦은 시간, 빈소를 지키며 선잠에 들었던 주유가 퍼득 정신을 차려 비어있는 옆자리를 보고는 그를 찾으러 나온 참이었다. 완만하게 경사가 진 갈대숲의 한켠에 희끄무레한 삼베옷이 비쳤다. "상주라는 녀석이 빈소를 비우고 이런 곳에 나와 있으면 어떻게 해, 백부." 질책하는 말에도 흘끔 쳐다보기만 할 뿐, 손책은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던 자세를 고치지 않았다. 주유는 한숨을 내쉬며 손책의 곁에 걸터앉았다. 얼핏, 무심한 얼굴에 눈물길이 비친듯도 했지만 그 역시 모른척 했다. 고개를 젖힌 주유는 손책이 바라보고 있는 밤하늘에 시선을 두었다. 그곳에는 별이 촘촘하게 빛나고 있었다. "…어렸을 때," 한참 뒤에 겨우 한 ..

[瑜策] 내기

수풀 사이로 짐승의 기척이 느껴졌다. 그래, 그 곳에 숨은 것이로구나. 손책은 기척이 느껴지는 곳으로 말을 달렸다. 숨을 죽이고 있던 짐승은 빨라지는 말발굽 소리에 위기를 느낀 것인지 풀쩍 몸을 날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제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은 생각하지 못한 채 다급하게 달아나고 있는 짐승은 뿔이 멋지게 돋은 숫사슴이었다. 아직은 조금 찬기를 품고 있는 바람이 손책의 뺨에 스쳤다. 전동에서 화살을 한 대 꺼내어 시위를 재고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저 녀석만 잡으면…! 팽팽하게 당겨진 시위를 놓는 순간 손책은 그것이 사슴의 급소에 명중할 것을 예감했다. 퍽, 퍽. 빠르게 바람을 가르고 날아간 화살이 사슴의 가죽을 뚫고 근육을 찢고 뼈를 부수었다. 명중이다. 그런데 뭔가 다른 소리가 섞여있었다. 뭐지..

[遼郭] 北辰

말하자면 그는 드넓은 초원 밤 하늘의 북신 같은 이였다. 장료는 막사 안에서 지도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곽가를 보며 어린 시절 말을 타고 달리던 초원의 별을 떠올렸다. 키 작은 관목들이 듬성듬성 서 있고 녹색의 풀들이 바람에 흩날리던 그 곳에서 장료는 거칠 것 없이 말을 달리고는 했었다. 초원에 어둠이 내려앉으면 온 몸이 이 너른 초원 위를 부유하는 듯 한 아찔함이 느껴졌다. 어린 시절의 그는 그 감각에 매료되어 매일 밤 홀린 듯 말을 타고 초원을 찾았다. 특별한 표시도, 정해진 길도 없는 곳이었지만 단 한 번도 곤란을 경험한 적은 없었다. 고개를 들어 밤 하늘을 보면 늘 같은 자리에 한결같은 북신이 떠 있었고 그 북신은 언제나 장료에게 가야 할 방향을 지시해 주었다. "장료, 잠시 이 쪽으로." 곽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