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롱불을 낮게 켜놓은 위왕의 침전을 지키는 사람은 평소에도 그 침전에 드나듦이 자유로웠던 하후돈 한 사람 뿐이었다. 침전의 밖에는 언제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할 수 있도록 의원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었지만 정작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병상에 누운 위왕과 그 앞의 장수는 언제나처럼 고요했다.
"다들 쫓아내고 나니 이제야 좀 조용히 쉴 것 같군."
"그래도 의원이나 시비 하나쯤은 가까이 두시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걱정이 가득 묻어있는 하후돈의 말에 조조가 피식, 숨이 새어나오는 듯 웃었다. 병마에 시달려 기력은 없었지만 그런 순간에도 저렇게 웃는 것이 조조답다면 조조다운 일일까.
"그래서 자네를 곁에 두지 않나, 원양. 의원보다 내 병을 잘 알고 시비보다 내 몸을 잘 아니까 말이야."
"…정말 끝까지 손이 가게 만드는군 맹덕, 아만."
"한평생을 그래왔으니 마지막이라 해서 다를까."
조조의 말에 하후돈은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으며 침상 곁에 놓인 면포를 들어 조조의 얼굴에 맺힌 식은땀을 닦아주었다. 그 조심스러운 손놀림을 느끼며 힘없이 눈을 감은 조조가 잠시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저승에서는 자네가 없어도 조금 참을테니 말이지,"
너무 일찍 따라오지는 말게. 심지 끝에서 사그라드는 호롱불 같은 말에 하후돈의 손이 멈칫, 그 움직임을 멈추었다.
료곽 ::
한밤중에 크게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집의 안채까지 울렸다. 막 잠자리에 들려다 그 소리를 들은 장료는 조금 짜증 섞인 태도로 불청객의 방문 이유를 듣고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급하게 의관을 갖추고 말을 달려 도착한 곳은 승상부 정원 한켠에 있는 작은 정자였다.
아, 장문원이네?
자네가 아까부터 찾았잖나. 그래서 내가 불러왔지.
주종이 쌍으로 머리 꼭대기까지 술에 취해 정자 아래에 선 장료를 보며 킬킬 웃음을 터트렸다. 문원, 이리 올라오게. 조조가 흐느적거리는 손짓으로 부르는 말에 올라간 정자 위는 여기저기 널부러진 술단지들로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문원, 곽봉효 저 괘씸한 작자가 말일세. 감히 주공인 내가 눈 앞에 있는데도 자네만 찾더라고.
승상.
아 글쎄, 자네를 안불러오면 집에도 안가겠다는거야. 여기서 죽을때까지 날 붙들고 술을 마신다잖아? 그런데 내가 말이지, 오늘은 꼭, 꼭 안채에 들어가봐야 하거든.
주공, 그 손 놔요. 그거 내껍니다.
시끄럽다 이놈아!
장료가 멱살 잡히듯 조조에게 잡혀있는것을 보며 비틀비틀 다가오던 곽가가 휙 내젓는 조조의 손에 몸을 맞고는 휘청거리다가 그대로 주저앉았다. 봉효! 놀라서 자신의 자를 부르는 장료의 목소리에 곽가가 키득키득 어깨를 떨며 웃었다.
왜 부르기만 해, 이자식아. 얼른 나 모셔가라고!!!
아 그래, 얼른 쟤 좀 데려가.
잡고 있는 손이나 놓고 그런 얘기를 해주시면 좋겠지만 말입니다, 주공.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한 말을 삼키며 장료는 조심스럽게 제 옷깃을 잡고 있는 조조의 손을 떼어놓고 곽가에게 다가갔다.
봉효.
어, 내꺼 왔네?
또 다시 키들키들 웃는 곽가를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쉰 장료는 그의 팔을 잡아 어깨에 걸치며 그를 업고 일어섰다. 대취하여 의지라곤 찾아볼수 없는 몸은 장료의 등 위에서 금세 팔다리를 늘어뜨렸다. 장료는 곽가를 업은 채 하인에게 기대어 졸고있는 조조에게 허리 숙여 인사한 후 정자를 내려왔다.
아 좋다. 편하다. 이대로 나 업고 집까지 가는건가?
밤 바람이 차다.
네 등은 따뜻한데?
목덜미에 코를 박으며 하는 곽가의 말에 장료는 아주 잠시 몸에 열이 오르는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읏차, 하고 곽가를 고쳐 업은 장료는 느린 걸음으로 승상부의 중문을 빠져나왔다. 등 뒤의 곽가가 가끔씩 웅얼거리는 말 중에 섞인 자신의 자를 들으며 하루쯤은 이대로 그를 업은 채 집까지 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사실, 곽가가 타고 온 마차는 이미 저만치 뒤로 멀어진지 오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