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덕질/삼국지 촉
[趙孔/外] 환상을 따르다
오장원에 자리한 촉의 병영은 늦은 시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총 군세 30만의 대군이 모여 있는 곳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있는 상황, 침묵은 간절한 기원과도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부름을 받고 공명에게 향하던 마대는 목적하고 있는 공명의 거처 근처에 새로 만들어진 작은 막사 앞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며칠 전, 공명은 강유에게 막사를 세우고 그 안에 작은 제단을 차릴 것을 명령했다. 더 이상 병사들에게 병이 깊어진 것을 감추지 못해 병영이 불안에 술렁이고 있을 즈음이었다. 그렇게 제단을 차려놓고 장군들을 불러 공명이 한 말은 마대에게 있어선 조금의 현실성도 보이지 않는 말이었다.
「일주일 동안 제단의 등불이 꺼지지 않으면 자신의 수명이 열두 해 늘어난다- 인가.」
공명에게 그 말을 듣던 순간 마대는 자신의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총사령관의 죽음을 감지하고 술렁이는 병사들을 진정시키기 위한 방법이라는 것인가. 언제나 합리적인 생각과 판단을 내리던 공명에게서 나온 방법이라고 하기에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허황되고 위험성이 크다. 사람의 목숨이 하늘에 빈다고 하여 늘어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마대의 생각이 어쨌든 간에 제단은 차려졌고 그 소문이 퍼져나간 이후 병사들의 술렁임은 곧 침묵의 기원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마대는 막사 가까이로 다가가 막사의 휘장을 살짝 걷어보았다. 촛불이 밝게 타고 있는 제단 앞에 익숙한 사람 하나가 꿇어앉아 향을 피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강유였다. 그는 인기척을 느꼈는지 잠시 고개를 돌려 마대를 확인하고는 들고 있던 향을 제단 위의 향로에 꽂은 후 엷게 미소를 띄며 마대에게 다가왔다.
「마 장군이시군요.」
「…이 곳에서 기도라도 하고 있었던 건가.」
「등불을 확인하러 온 김에 잠시 향을 하나 피웠을 뿐입니다.」
공명의 병이 깊어진 이후 강유 역시 하루가 다르게 수척해지고 있다. 강유가 저 제단과 공명이 한 말을 진심으로 믿고 있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지극정성으로 공명의 병수발을 들고 제단을 돌보고 있다는 것은 마대도 알고 있는 일이었다.
「그러는 마 장군께서는 이 시간에 어쩐 일이십니까?」
「승상께 가던 길이었네. 하실 말씀이 있다 하시더군.」
「그렇습니까. 그럼 함께 가시죠.」
공명의 거처로 앞장서가는 강유를 바라보며 마대는 강유에게 저 제단과, 공명이 한 말을 믿느냐는 질문을 하고 싶었지만 입을 열지는 않았다. 공명의 막사 앞에서 강유는 공명에게 마대가 왔음을 고했다. 막사로 들어가 마주한 공명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병색이 완연해보였다.
「저를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대에게 할 말이 있소. 백약, 잠시 자리를 비켜주겠느냐. 내 마 장군과 긴히 할 이야기가 있다.」
공명의 말에 강유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휘장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막사 근처에서 멀어진 것 같지는 않았다.
「무슨 일이십니까.」
「마 장군께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소.」
「부탁?」
「내키지 않는다면 내 마지막 명령이라 생각해도 좋소. 어쨌든 마장군이 반드시 해 주어야 하는 일이니.」
마지막 명령. 마대는 공명을 바라보며 그 말을 곱씹었다.
「무엇입니까?」
「내가 죽은 후 위문장이 군권을 장악하려 하는 움직임을 보이면 그를 처단해주길 바라오.」
공명의 말을 들은 마대는 이곳에 들어와 처음으로 공명과 눈을 마주쳤다. 죽어가는 육체에서 눈빛만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느낌이었다. 마대의 머릿속에 언젠가 집무실 안에서 엉망으로 흐트러져 있던 공명을 발견한 일이 떠올랐다. 문 앞에서 마주친 위연은 마대를 보고 입 끝을 조금 당겨 웃은 후 유유히 사라졌다. 집무실 바닥에 쓰러져 정신을 잃고 있는 공명에게 남겨져 있는 흔적은 그가 조금 전 방을 나간 사람에게 어떤 일을 당했는지 알려주었다.
「지금 마 장군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것도 같소만, 위연을 처단해 달라는 것은 그 일 때문은 아니오.」
공명의 얼굴에 얼핏 쓴웃음이 스쳐 지나갔다.
「그가 군의 일로 나와 대립이 많았던 것은 마장군도 알고 있을 것이오.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그를 누를 수 있었지만 죽은 후에는 어찌 변할지 모를 사람이오. 최악의 경우에는 군이 둘로 분열되어 내전이 일어날 수도 있소.」
「제가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위연이 반란의 조짐을 보이면 그의 편에 서시오.」
「기회를 봐서 목을 베란 말씀이십니까.」
「내 생각대로 된다면 아마 마 장군에게 적절한 신호가 갈 것이오.」
여기까지 말을 마친 공명은 숨이 찬 듯 잠시 심호흡을 했다. 마대는 잠시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위연에 관한 것은 알아들었습니다. 헌데 어찌 마지막 명령이라 말씀 하시는 겁니까. 내일이면 저 제단을 만든 지 이레째가 되는 날입니다. 아직까지 별 일 없이 등불이 타고 있지 않습니까.」
마대의 말에 공명은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하하 하고 낮은 웃음소리가 공명의 입에서 새어나왔다.
「설마 마 장군에게서 그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구려. 저 제단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오. 혹 나를 위한 것이라 해도, 저런 등불 하나로 어떻게 사람의 수명을 좌지우지 할 수 있겠소.」
「하지만 많은 이들이 저 제단과 승상의 말을 믿고 있다는 것은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제단이 차려진 이후 병사들의 동요가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모두 숨죽여 승상의 쾌유를 빌고 있습니다.」
「그것은 고마운 일이나-어찌하겠소. 인명은 하늘에 달린 것을. 산 자들의 기원이야 그저 스스로를 위한 약간의 위안이 될 뿐. 그것은 마장군도 잘 알고 있지 않소.」
「…….」
공명이 무엇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인지 마대는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난세였다. 사람의 죽음은 도처에서 쉽게 겪을 수 있다. 더군다나 마대는 조조에 의해 일족 이백여 명이 죽임을 당했다. 그 때 마대에게는 죽은 이들의 평안을 빌 시간조차 없었다. 그 참사에서 겨우 자신의 몸 하나를 빼내어 종형 마초에게 돌아가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는 마대에게 마지막 남은 단 하나의 피붙이였다. 그런 마초마저 병으로 세상을 떠난 것이 벌써 12년 전의 일이다.
「형님은, 형수와 조카들마저 하후연에게 목을 베인 후 삶 자체를 재촉하듯 전장만을 찾아다녔습니다.」
「선제께 귀순한 후엔 그래도 조금, 안정을 찾지 않으셨소.」
「… 소열황제께서는 좋은 주군이셨습니다. 형님이 받은 상처를 어떻게든 감싸주려고 하셨지요. 하지만 그런 주군의 인자함도, 촉에서의 안정된 생활도 치유해주지 못할 무언가가 있었던 겁니다.」
그것을 무엇이라 설명해야 할 지 마대도 정확히 알기는 힘들었다. 무너져버린 자긍심, 태양이 작열하는 사막 위에 홀로 남겨진 듯한 고독, 과거 서량의 지배자였던 마초 맹기의 근간을 이루고 있던 것들이 복구할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어 그 기품 있고 고결한 영혼을 좀먹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일족의 원수이던 조조의 죽음이 계기가 된 듯, 그는 그 소식을 들은 이후 허망할 정도로 빠르게 스러져갔다. 마초는 조조에게 일족을 모두 잃은 뒤, 마치 남아있는 삶을 불태우는 듯한 시간을 살아왔던 것이다. 눈부신 무용도, 꺾이지 않던 기개도, 모두 그의 생명과 맞바꾼 광채였다. 마대는 때때로 그런 종형의 모습에 눈이 멀고 숨이 막히는 감각을 느껴야 했다. 그 결백한 등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한 상실감과 시린 서글픔이 몰려왔다.
마지막에 마초는 마대에게 미소 지으며 미안하다는 말을 남겼다. 혼자 남겨두는 것에 대한 미안함이었을까. 하지만 그 순간 마대에게 느껴지던 것은 마지막 남은 가족을 떠나보내야 한다는 애통함이 아니었다.
「승상, 산 자들의 기원이 스스로를 위한 위안이라 하셨습니까. 그러하다면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자신은 단 한 번도 죽어가는 사람을 위해 기원 해 본 적이 없다. 이백여 명의 일족은 기원을 바칠 기회조차 없이 그 목이 잘렸고, 하나 남은 종형의 죽음은 그에겐 구원이나 다름없는 죽음이었으니 그 목숨을 살려 달라 기원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형님의 죽음은, 차라리 그 죽음이 저에게는 더 위안이었습니다.」
마초가 숨을 거두는 순간에야 겨우 마대는 자신의 숨통이 트이는 것을 알았다. 그 때 느껴지던 안도감을 누구에게 말한 들 알아줄까. 마대의 고통은 마초가 그 숨을 멈추어 고통조차 느끼지 못하게 된 그 때에 함께 끝났다.
「그러하오…? 마 장군에게는 태향후의 죽음이 차라리 더 위안이었소…?」
마대에게 되묻는 공명의 새까만 동공이 조금 흐려졌다. 그제야 조금, 공명의 주변에 죽어가는 이의 비애가 느껴지는 듯 했다. 공명은 마대를 바라보던 눈을 돌리지 않은 채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나는, 오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사람의 죽음이 힘들다오. 그래서인지 나도 태향후 처럼 차라리 위안을 주는 죽음이고 싶소. 허나 내가 죽으면 애통해 할 이들이 더 많고, 나라에는 혼란을 불러 올 것이 자명하니 가는 마당에도 저런 우스운 제단을 만들고 마 장군에게도 또 부담을 드리게 되는구려.」
공명의 말대로, 공명이 촉이라는 나라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을 생각해 본다면 그의 죽음은 나라를 공황으로 몰아갈 수도 있을만한 사건이 될 것이다. 당장의 일만 생각해 보아도 위군과 대치하고 있는 촉군을 무사히 한중까지 퇴각시키는 것이 문제가 된다. 게다가 병사들의 동요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 하는 것도 관건이다. 공명의 무사쾌유를 바라며 제단까지 만든 참이다. 자신들의 기원에도 불구하고 공명의 명이 다하게 되면 병사들의 동요와 불안은 한층 더 커질지도 모른다. 결국 저 제단은 양날의 검이나 마찬가지다. 그것을, 이 총명한 사람이 생각하지 못했던 걸까. 지금이라도 빨리 저 제단을 치워야 한다. 그렇게 판단한 마대는 자기도 모르게 공명에게 한발자국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마대가 말을 꺼낸 직후, 막사의 바깥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와 마대의 소리가 묻혀버렸다. 소란은 점점 가까워지더니 막사의 바로 앞에서 분노에 찬 강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대는 급히 막사 바깥으로 나가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아보려 했지만 공명에게 제지당했다.
「승상?」
「…….」
공명은 마대의 부름에도 대답하지 않은 채 막사의 입구를 뚫어져라 바라보기만 했다. 몇 번의 큰 소리가 더 난 뒤 거칠게 막사의 문이 열리며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뒤이어 바로 강유가 뛰어 들어오며 외쳤다.
「승상의 허락도 없이 멋대로 들어오시다니, 이 무슨 무례요, 위 장군! 어서 손에 든 등을 돌려주고 승상께 용서를 청하시오!」
한 손에 제단 위에 있던 것이 틀림없는 등불을 들고 공명의 막사로 난입한 위연은 강유의 말에 비웃음만 지어준 채 성큼성큼 공명의 앞으로 걸어왔다. 그리고는 공명의 눈앞에 꺼질듯 위태위태한 등불을 내밀었다.
「아주 재미있는 일을 벌이셨더이다, 승상.」
「내 그대를 부른 일이 없는데 이곳까지 어쩐 일이시오, 위장군.」
공명은 사나운 눈을 하고 있는 위연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무표정한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도 떠오르지 않아 흡사 무생물을 보는 듯한 모습이었다. 위연이 다시 입술을 실룩이며 흉폭해 보이는 미소를 짓자 강유가 달려들 듯 위연을 향해 몸을 날리려 했다. 하지만 그런 강유의 움직임은 곁에 있던 마대에 의해 멈추어졌다.
「놔 주십시오, 마 장군!」
「안 돼. 지금 위연 장군이 승상께 무례를 저지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자네마저 하극상에 끼어들게 할 수는 없네. 위연 장군은 엄연히 자네의 윗사람일세.」
「하지만 그가 제단에서 등을 들고 나왔단 말입니다!」
마대에게 잡힌 어깨를 빼내려고 몸부림치는 강유는 거의 절규에 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마대는 더더욱 강하게 강유를 붙잡았다. 저 등은, 이 밤이 가기 전에 반드시 꺼져야 할 등이었다.
마대와 강유의 실랑이를 잠시 지켜보던 위연은 강유에게 다시 픽 하는 웃음을 돌려주었다. 그리고는 공명을 향해 말했다.
「승상, 그리 목숨에 미련이 많으시오이까. 내 처음 승상께 제단에 대한 말을 들었을 때에는 드디어 승상이 죽음을 앞두고 머리마저 이상해진 것이 아닌지 의심하였소이다.」
「…….」
「실제로 제단을 차릴 때에도 설마 설마 했는데, 병사들에게 보초까지 서게 하며 지키게 할 줄이야. 내 승상의 말이 허황되다 좀 비웃어도 되겠소이까?」
「위연!!」
위연의 말에 반응 한 것은 공명이 아니라 마대에게 잡혀있던 강유였다.
「애송이는 닥치고 있거라. 내 승상께 이야기 하고 있지 않느냐.」
위연이 강유를 향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낮게 위협하듯 사나운 목소리였지만 강유 역시 지지 않고 맞서려 했다. 그 때 잠자코 위연의 말을 듣고 있던 공명이 입을 열었다.
「위 장군께서는 무슨 근거로 저 제단이 허황되다 하시오? 북두칠성이 사람의 명을 관장하는 별임은 태고적 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아니오. 그러니 나의 쾌유를 바라는 사람들의 기원을 모아 북두칠성께 치성을 드린다면 열두 해 목숨 쯤 늘려주실 수도 있는 일 아니겠소.」
「하, 정말 미쳤나보군. 그게 사실이라면 오년 전, 조자룡은 왜 그리 보냈소이까? 그가 죽지 않기를 가장 바란 사람이 승상일 텐데 어찌 그리 속수무책으로 보냈느냔 말이오. 이런 제단쯤 열 개 건 스무 개건 만들어 치성을 드렸다면 그가 아직 살아있을지도 모를 일 아니오이까.」
위연의 말에 공명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창백하게 질렸다. 그제야 위연은 만족한 반응을 얻은 듯 큭큭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러나저러나, 그리도 더 살고 싶었소이까, 승상? 나는 그동안 승상이 죽지 못해 사는 줄로만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가 보오.」
「…….」
「말해 보시오, 승상. 이런 멍청한 짓을 할 정도로 삶에 집착이 있는 줄 알았다면 내 승상을 욕보이는 일도 없었을 것 아니오. 제 목숨 잡아먹는 나라를 혼자서 십이 년이나 더 끌고 가실 생각이시오?」
「…그렇다면 어찌 하시겠소.」
「뭣?」
공명은 여전히 창백하게 질려있었지만 위연을 똑바로 바라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야윌 대로 야위어 뺨마저 움푹 꺼져있는 얼굴에 눈빛만이 형형하니 어찌 보면 귀기라 표현해도 좋을 법 한 기운이 서려 있었다. 그리고 위연의 입에서 뜻밖의 말을 들은 강유의 얼굴에 경악의 빛이 스쳐지나갔다.
「뭐라 하시었소, 승상?」
「내가 저 멍청한 짓을 해서라도 더 살고 싶다 하면 어찌 하시겠냐 물었소. 지금이라도 당장 손에 들고 있는 등불을 얌전히 제단 위에 돌려놓으시겠소? 아니면 차라리 죽여 달라 외치라며 그 때처럼 이 몸을 또 욕보이시겠소?」
「이……!」
위연은 순간적으로 공명의 팔을 잡아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병마에 지친 몸이 힘없이 끌려오다가 거세게 기침을 내뱉었다. 흡, 하는 신음소리와 함께 약간의 피가 공명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마대와 강유의 눈에 위연의 손이 분노로 부들부들 떨리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마대는 여전히 강유를 강하게 붙잡은 채 그저 사태를 바라보기만 했다. 위연의 손에 들려있는 등불은 비록 위태롭긴 했지만 여전히 불이 꺼지지 않고 있다.
「이보시오, 승상. 내 비록 신선의 재주가 없어 승상의 수명을 늘려주진 못하지만 죽여 드리는 것은 기꺼이 할 수 있소이다. 그러니 솔직하게 말해 보시오. 진심으로 더 살기를 바라시오?」
「…내가 어떤 대답을 하던 이미 위장군 안에서는 결론이 나온 문제인 듯 하오만.」
처음으로 공명의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공명의 팔을 잡은 위연이 더욱 세게 힘을 주었지만 아픔조차 느껴지지 않는 듯 했다. 한동안 공명을 노려보고 있던 위연이 크게 광소하며 잡고 있던 공명의 팔을 뿌리치듯 놓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꺼내들었다.
「과연 승상이시오. 그렇다면 내가 승상의 원을 들어드리리다.」
「안 돼!!」
필사적으로 마대의 손을 뿌리친 강유가 위연에게 달려들었지만 그 보다는 위연의 검이 손에 들고 있던 등을 반으로 자르는 것이 더 빨랐다. 한순간 너울거리는 불빛의 잔상을 남긴 등 안의 초는 바닥에 떨어져 힘없이 꺼졌다.
「위연-!!!」
분노와 절망에 찬 소리를 지르며 강유가 검을 빼어 들고는 위연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런 강유를 막은 것은 마대였다.
「놓으십시오! 이번에도 막으신다면 마 장군도 용서치 않겠습니다!!」
「정신 차리게, 백약!」
「놔! 죽여 버리고 말겠다, 위연!!」
강유는 마대에게 붙잡혀 몸부림을 치며 절규했다. 어느새 다시 검을 갈무리 한 위연은 강유 쪽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몸을 돌려 막사를 나갔다.
「…그만 되었다, 백약. 검을 내려놓아라.」
「승상!」
「이미 등불이 꺼졌다. 어찌 할 방도가 없지 않느냐.」
강유를 달래는 공명의 목소리는 매우 지친 듯 보였다. 마대는 잡고 있던 강유를 놓았다. 검을 바닥에 버린 채 공명에게로 다가간 강유는 설운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었다. 공명이 손을 들어 강유의 머리를 쓰다듬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마대는 문득 떨리고 있는 강유의 등에서 마초의 잔상을 보았다. 그리고는 강한 예감에 휩싸였다.
「울음을 그쳐라, 백약. 인명은 하늘에 달린 것이니, 네 이리 서러워한다 하여 내 명이 늘진 않는다.」
「승상….」
「제단을 치워주겠느냐. 이미 병사들도 등이 꺼진 것은 다 알았을 터. 오래 남겨두어 좋을 것이 없다.」
「승상….」
「부탁한다.」
공명의 말에 강유는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돌려 막사를 나갔다. 그 때 까지 잠자코 있던 마대는 강유의 기척이 멀어진 것을 느끼고 입을 열었다.
「…위연이 저리 할 것을 미리 알고 계셨습니까.」
「그는 이 촉에서 드물게 내가 죽기를 바라는 사람이오. 완벽하게 확신하진 못했지만 제단을 못마땅해 할 것이라고는 생각하고 있었소.」
「그가 승상의 계략에 걸려든 것이로군요.」
「위연 정도의 지위에 있는 장수를 처단한 후 병사들의 동요를 막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소. 물론 병사들이 내 말을 어디까지 믿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무의식적으로나마 내 죽음에 대한 원망을 위연에게 돌리게 된 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오.」
「하지만 백약에게는 못할 짓을 하셨습니다.」
마대의 말을 듣고 공명은 강유가 나간 막사 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바닥에는 아직까지 강유가 흘린 눈물이 마르지 않아 점점이 짙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공명은 손을 들어 얼굴을 감쌌다. 야윈 손목에 위연의 손자국이 붉게 나 있었다.
「마 장군, 나는 아무래도 백약에게는 죄인인 것 같소. 내 욕심이 앞서 그에게서 가족도 친구도 모두 빼앗아버렸는데, 남겨줄 수 있는 것이 없으니.」
「후회하십니까?」
「…그가 날 원망조차 하지 않으니 내 어찌 함부로 후회한다 할 수 있겠소. 그저 감사하고 미안할 따름이오.」
한동안 힘겹게 숨을 들썩이던 공명은 다시 거센 기침을 내뱉었다. 더 이상 몸을 가누기 힘든 듯 기울어지는 공명을 부축한 마대가 침상 위에 공명이 눕도록 도왔다. 위연이 꺼버린 등불의 빛이 사그라지듯, 공명의 몸에서도 생명이 사그라지는 것이 눈에 보이는 듯 했다. 공명을 눕힌 후 침상을 정돈한 마대가 공명에게 가볍게 인사를 한 후 막사를 나가려 할 때 힘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마지막 부탁을 들어준 이후에는 떠나셔도 좋소, 마 장군.」
「무슨 말씀이신지……?」
「어딘가, 안식을 찾을 수 있는 곳으로 말이오. 마장군은 표기장군의 죽음으로 위안을 얻었다 했지만 그러한 것은 너무 슬프지 않소.」
「…….」
「처음부터 촉에 신종을 맹세했던 것은 태향후였지 마 장군이 아니었소. 그러니 지금까지 보여준 우정에 감사하는 의미라 생각해 주시오. 사실은 할 수 있다면 서량을 돌려드리고 싶었소만.」
마대가 돌아보았을 때 공명은 침상에 누운 채 고개를 돌리고 있어 표정을 알아볼 수 없었다. 잠시 그 마른 어깨를 바라보던 마대는 허리를 숙여 공명을 향해 인사를 하고는 막사를 나왔다. 벌써부터 병영에는 제단의 등불이 꺼진 일이 퍼져 술렁임이 일고 있다. 걸음을 옮기다 눈에 들어온 강유의 등에 달그림자가 절망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
남정성 앞에 진을 친 마대는 고개를 들어 성벽 위의 강유를 바라보았다. 며칠 사이 눈에 띄게 날카로워진 얼굴에는 비장함 마저 감돌고 있었다. 강유에게서 느꼈던 예감이 현실로 다가왔음을 알 수 있었다. 공명의 죽음은 강유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을 불러 왔으리라.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남은 시간을 태워 삶을 재촉해 나아가는 것 뿐. 그리고 그러한 강유의 삶은 천천히 주변 사람들을 질식시켜 나갈 것이다.
「애송이 녀석, 결국 승상에게 목을 매더니 일찌감치 신세를 망쳤군.」
어느 샌가 마대의 곁으로 다가온 위연이 강유를 보며 말을 툭 내뱉었다. 그는 공명의 예상대로 공명이 죽은 뒤 군권이 양의에게로 돌아가자 그에 반발하여 자신의 군을 이끌고는 양의에게 대항하기에 이르렀다. 마대가 위연에게 합류하기를 청했을 때에도 큰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공명마저 죽은 이 마당에 마대가 굳이 촉에 연연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마대와 위연이 성 앞에 진을 치자 성 안쪽의 기척도 분주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강유가 병사를 이끌고 성을 나왔다.
「평생을 죽은 망령에게 붙잡혀 살 녀석이니 차라리 그리 좋아하던 승상에게 빨리 보내주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군.」
위연이 병사들에게 전진을 명령하며 말했다. 위연과 나란히 말을 몰던 마대가 문득 생각난 듯 위연에게 물었다.
「언젠가 자네가 승상의 집무실에서 나오는 것을 마주친 적이 있지.」
「아아. 그 때 말인가.」
「그 때, 승상을 죽이려 했었나?」
「글쎄. 지금 와서는 그때의 심정이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죽이고 싶었던 것은 확실한 듯하네. 본래부터 매끄러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조자룡이 죽은 이후 필사적으로 삶에 매달리는 승상의 모습이…….」
잠시 적당한 표현을 찾듯 말을 끊은 위연은 어느새 제법 가까이 보이는 강유의 얼굴을 보며 말을 이었다.
「구역질이 났어.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그래서 승상을 안았지.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롭고 수치스럽게. 단 한 번이라도 차라리 죽여 달라 말 한다면 바로 그렇게 해 줄 생각이었어.」
「그래서 제단의 등불을 꺼버린 건가?」
「그래. 그렇게 살아가는 꼴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어. 신기하게도, 승상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숨통이 확 트이는 느낌이 들더군.」
「안심이 되던가?」
「안심. 그렇게 말 할 수도 있겠구만. 승상은 더 이상 그리 힘겹게 살아가지 않아도 되고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숨 막혀 하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
대치하고 있는 양 쪽 병사들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병사들의 앞으로 창을 든 채 말을 몰고 나온 강유가 입을 열었다.
「역적 위연은 들어라! 네 일찍 소열 황제의 은덕을 입어 촉에 충성할 기회를 얻었고 현 황제폐하와 돌아가신 승상께서도 너를 낮춰보지 않으셨는데 어찌하여 나라를 배반하려 하느냐!」
「애송이는 빠져라. 내 볼 일이 있는 것은 죽음을 앞두고 정신이 흐려진 승상에게서 군권을 빼돌린 양의 놈이지 새파랗게 어린 네 녀석이 아니다.」
「닥쳐라! 나는 아직까지 그 자리에서 모두의 기원을 짓밟은 너를 찢어죽이지 못한 것이 한이다.」
「강유야, 네가 아무리 어리고 물정을 모른다 하나 설마 그 등 하나로 승상의 명이 좌우되리라 믿었던 것은 아니지 않느냐? 그러니 썩 물러가고 양의를 나오게 해라.」
위연의 여유 만만한 대응에 강유는 얼굴을 붉히며 분노했다. 마대는 그런 강유를 보며 작게 혀를 찼다. 어쩔 수 없는 연민이 밀려들었다. 위연의 말대로 차라리 죽여주는 것이 그에게 더 편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잠시 화를 삭이던 강유는 다시금 위연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승상께서 살아계실 적 이미 네가 반역을 꾀할 것을 예상하고 계셨다. 너의 헤아림은 승상에게 크게 미치지 못할 터, 네가 말 위에서 '누가 감히 나를 죽이겠는가?' 하고 크게 외칠 배짱이나 있겠느냐?」
강유의 말에 위연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마대는 그것이 공명이 말했던 적절한 신호라는 것을 깨달았다.
「너와의 놀이에 응해줄 시간이 없다, 애송아. 허나 네가 그리 듣고 싶다면 한 번쯤 들려주지 못할 것도 없지. 그 이후에 곧 네가 그리도 사모하던 승상의 곁으로 보내줄 터이니 감사히 여기거라.」
위연은 말을 조금 더 앞으로 몰았다. 그 뒤로 바싹 마대가 따라붙으며 말했다.
「…자네는 그 제단이 정말 승상의 수명을 연장시키기 위했던 것이라 생각하나?」
「그럴리가. 그는 지극히 현실적인 사람이었어.」
「그렇다면 그것이 누군가를 계략에 빠뜨리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은?」
그 말에 위연이 고개를 조금 돌려 마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정면을 향하고 있는 마대의 옆얼굴은 마치 아무런 말도 내뱉지 않은 것처럼 한 점의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참으로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촉의 승상이었고, 자신의 죽음마저 이용하는 책사였다. 애초에 당해낼 수 있을 리 없다 생각하며 위연이 입을 열었다.
「차라리 그 쪽이 더 타당한 이유겠군. 그 마지막 덫에 걸린 이 과연 누구일까.」
강유의 앞까지 가까이 진출한 위연은 강유를 위시한 병사들 모두에게서 찌를듯 느껴지는 증오에 빙긋 웃음 지었다. 그리고는 크게 외쳤다.
「누가 감히 나를 죽이겠는가!」
「잘 가게.」
위연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마대의 검이 공중에서 크게 호선을 그었다. 뜨거운 피가 얼굴에 확 튀었지만 마대는 눈조차 깜빡이지 않았다. 위연의 목이 땅바닥에 굴렀고, 의지를 잃은 목 없는 몸도 쿵 소리를 내며 말 위에서 떨어졌다. 마대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양쪽 병사들 모두 크게 당황한 듯 했지만 위연의 죽음을 확인하고는 큰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그것은 위연이 거느리고 있던 병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마 장군, 이것이…….」
강유의 놀란 음성에 마대는 얼굴에 묻은 피를 손등으로 닦아내며 말했다.
「승상의 부탁이었다네. 위연에게 모든 원망을 몰아넣은 채로 목을 베는 것이.」
「승상의…….」
마대의 말에 강유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마대는 또 다시 혀를 차며 강유의 어깨를 잡았다.
「백약. 나는 가능하면 자네가 승상의 그늘에서 벗어나길 바란다네.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도 알고 있어.」
「마 장군.」
「나는 이 길로 바로 촉을 떠날걸세. 승상께서 그리 하라 하셨지. 서량, 사막으로 갈 생각이네. 자네에게 늘 무운이 있기를 빌겠네.」
강유에게 이야기를 마친 마대는 서쪽을 향해 말머리를 돌려 말을 달렸다. 서량의 넓은 초원, 그 뒤의 광활한 사막을 떠올렸다. 모든 것을 잃기 전, 그곳에서 함께 말을 달리던 마초는 눈이 부실만큼 빛나는 사람이었다. 그 때의 그 곁에서는 단 한 번도 질식할 듯 한 힘겨움을 느낀 적이 없다. 그것을 다시 되찾고 싶었다. 공명이 마대에게 말했던 안식이라는 것도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뒤쪽에서 강유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눈앞으로, 신기루처럼 마초의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終
'일상덕질 > 삼국지 촉' 카테고리의 다른 글
| [馬趙] 눈의 노래, 한 번 더 (0) | 2015.11.01 |
|---|---|
| [馬趙] 눈의 노래 (0) | 2015.11.01 |
| 눈싸움 (0) | 2015.11.01 |
| [趙孔] 산책 - 적벽movie ver. (0) | 2015.11.01 |
| [趙孔] 乘風 (0) | 2015.11.01 |
'일상덕질/삼국지 촉'의 다른글
- 현재글[趙孔/外] 환상을 따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