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셉티콘의 반란이 시작된 이래 사이버트론 행성을 채우고 있는 것은 포격으로 인한 먼지와 폭탄이 터지는 시끄러운 소음들이었다. 조금 전까지도 비행체들로 구성된 디셉티콘의 항공부대가 오토봇들의 진영을 한바탕 휩쓸고 지나갔다. 그들의 기습적인 폭격에 이미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진 오토봇들이 즉시 반격을 시도했지만 하늘을 나는 자들과 땅을 달리는 자들의 차이는 쉽게 메울 수 없는 것, 한바탕 전투가 끝난 뒤 그 자리에는 여기저기 부서지고 잘라진 오토봇들의 몸체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쥐새끼같은 디셉티콘.」
양 퍌의 무기들을 다시 손으로 트랜스폼 한 아이언하이드가 그 잔해들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그 와중에 자신의 로켓포에 맞아 땅으로 추락해 버르적거리는 디셉티콘을 발견한 아이언하이드는 그에게 다가가 그의 스파크를 뜯어내 파괴했다. 고통에 가득 찬 단말마가 청각센서를 스쳐지나갔다.
「그대로 놔두어도 죽었을 놈인데, 확인사살 한 번 끔찍하게 해주시는군.」
이런 상태의 아이언하이드에게 태연하게 시비를 걸며 다가올 수 있는 것은 오토봇중에서도 얼마 되지 않는다. 뒤쪽에서 툭툭 자신의 샷건을 만지며 다가오는 라쳇의 말에 아이언하이드는 코웃음을 치고 들고있던 디셉티콘의 스파크를 휙 내던졌다.
「일말의 동정심이라도 싣고 그런 말을 해줬으면 하는데.」
「아아, 내 동정심은 이 자식들이 부셔놓은 오토봇들을 고칠 때 필요한 인내심에 할당하기로 했지.」
아이언하이드의 옆에 선 라쳇이 몸을 굽혀 땅에 떨어진 동료의 팔을 집어들었다. 쯧쯧, 이건 새 파츠로 교환해야겠군 다시 못써먹겠어. 이봐, 살아있는 놈들은 시각센서라도 좀 깜빡여봐! 일단 급한 놈들부터 응급처치 들어간다! 위잉 소리를 내며 샷건이 달려있던 라쳇의 오른팔이 다시 손으로 트랜스폼 하고 그 위로 힐링레이저가 나타났다. 부상당한 오토봇들을 찾아 곁을 떠나는 라쳇의 등을 바라보며 아이언하이드는 괜시리 화가 치밀어올라 죽어있는 디셉티콘의 동체를 발로 걷어찼다. 휘익, 사장님 나이샷~! 아이언하이드의 발길에 채여 멀리멀리 날아가는 디셉티콘의 부품을 보고 재즈가 낄낄대며 찬사를 보냈다.
+
「아, 나에겐, 정말, 휴식이, 필요해.」
자신의 무기를 손보고 있던 아이언하이드의 프라이빗 룸에 라쳇이 지친 목소리로 들이닥친 것은 기습적인 전투가 끝나고 부상병들의 치료를 위해 그가 의료동에 틀어박힌지 정확히 하루 반만의 일이었다. 강철의 몸을 가지고 있는 기계생명체인 사이버트로니안들은 쉽사리 육체적 피로를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문제는 정신적인 것.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들듯 피곤한 정신에는 피곤한 몸이 딸려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라쳇의 피로를 반영하듯 푸른빛의 시각센서가 평소와는 다르게 흐려져 있었다.
「피곤하면 네 방에 가서 쉬지 뭐하러 온거냐.」
「인정머리 없는 곰탱이자식같으니.」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으며 아이언하이드의 곁에 앉은 라쳇이 오른팔을 들어 그 끝을 샷건으로 트랜스폼 했다. 뭐야, 지금 여기서 나랑 인정머리를 찾는 총격전이라도 하겠다는거? 그런거라면 언제든지- 하고 혼자 삼천포대교를 건너 질주하려는 아이언하이드를 식은 눈으로 바라보던 라쳇은 자신의 샷건을 아이언하이드의 눈 앞에 흔들어보였다.
「또 혼자 어디까지 가려는거야. 정신차려. 총이 이상하다고.」
「뭐?」
「내 오른팔에 달린 이 샷건이 이상하다는거다, 이 곰같은 녀석아. 어디가 막혔는지 하마터면 디셉티콘이 아니라 내 팔을 아작낼 뻔 했어. 나도 이것만 아니면 내 방으로 돌아가 꿈속에서 내 일거리를 계속 늘려주고 있는 디셉티콘 놈들을 하나씩 썰어버리고 싶다고.」
그러라고 있는 톱니가 아닐텐데. 하고 꿍얼대면서도 아이언하이드는 라쳇의 오른팔 샷건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어차피 사이버트로니안들에게 있어선 무기 역시 몸의 한 부분이나 마찬가지이지만 그래도 무기는 무기전문가에게. 사이버트로니안의 몸을 속속들이 꿰뚫고 있는 라쳇은, 그렇게 때문에 오히려 더 철저하게 자신의 분야를 지키려고 했다.
「협력은 할 수 있지만 괜히 어설픈 지식으로 손 대는건 옳지 않아. 그러는 쪽이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소재도 확실하게 할 수 있고. 무기가 잘못되어서 내가 다치면 네녀석이 책임져야 하지 않겠냐.」
「알겠으니까 입 좀 다물어. 지금 살펴보고 있잖아!」
울컥 하는 아이언하이드의 반응에 라쳇이 바람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아이언하이드는 일견 대범하고, 조금쯤은 막가인듯 보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는 확실하게 알고 있는 이였다. 조심스럽게 라쳇의 샷건을 분해해 고장난 부분을 살펴보던 아이언하이드에게 총 뒤로 숨어있듯 빼꼼하게 끝을 내보이고 있는 라쳇의 손가락이 눈에 들어왔다. 얼핏 보기에도 자잘한 기스들이 많이 보이는 손끝이었다. 사실 아이언하이드의 손은 라쳇의 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하지 않을 만큼의 생채기로 뒤덮여 있지만 그것은 처음부터 자신이 군인이었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아이언하이드는 자타가 공인하는 무기광이었다. 내전이 일어나기 전, 사이버트론이 아직 평화로웠을 때에도 아이언하이드의 손은 언제나 무기들로 인해 자잘한 흠이 끊이질 않았다.
라쳇의 손가락은 아이언하이드의 것보다 마디가 길고, 얇고, 섬세한 작업을 하기 좋은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그가 하는 일이 사이버트로니안의 동체를 지극히 미세한 부분까지 다루어야 하는 일임을 생각해보면 그 손가락의 모양새가 왜 그렇게 생겨야 하는지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라쳇이 저 손으로 자신이 해야하는 일만 할 수 있었을 땐, 그의 손에 저렇게 생채기가 남을 일도 없었다.
뭐, 그 전에 이 팔에 힐링레이저 이외의 것-특히나 무기-을 이식해 트랜스폼 할 일도 없었겠지만.
어쨌거나 조금이라도 빨리 무기의 이상을 찾아내 고치고 쉬게 해주는 것이 라쳇을 돕는 일이었다. 정말로 피곤에 지친 라쳇은 오른팔을 아이언하이드에게 맡긴채 마치 졸고 있는 듯, 시각센서의 푸른 빛을 깜빡깜빡 점멸하고 있었다. 어디냐, 도대체 어디가 잘못되었길래 감히 내가 달아 준 무기 주제에 오히려 라쳇을 다치게 할 뻔 했다는거냐. 킁킁, 나타나라 나타나.
+
라쳇의 샷건에 생긴 결함은 일단 장전 부분의 부품이 마모되면서 스프링이 떨어져나간 문제가 가장 컸다. 하지만 그 이외에도 제 스스로 넘어지고 부딪치고 깨지길 잘하는 (의외로) 방정맞은 라쳇의 행동거지 덕에 작은 결함들이 몇가지 더 있었다. 결함부분을 고치고 깨끗하게 손질까지 마무리 한 아이언하이드가 라쳇의 어깨를 툭 치자 반쯤 졸고 있던 라쳇이 정신을 차리려는 듯 고개를 흔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 됐다.」
「으하아아- 정말 죽겠다. 이제 괜찮은거야? 시험 안해봐도 되려나?」
「문제 없을거라 생각하지만 시험 하려거든 사격장에 가서 해. 여긴 내 프라이빗 룸이다.」
「어련하시겠어.」
라쳇은 어깨를 으쓱 하며 샷건을 다시 손으로 트랜스폼 했다. 조금 전까지 샷건 뒤에 숨어있던 길고 홀죽한 손가락이 모습을 드러내자 아이언하이드는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그 손가락 끝에 고정시켰다. 자잘한 생채기들, 그리고 중간마디가 눈에 띄게 찌그러진 부분도 있다. 아이언하이드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방을 나가려는 라쳇의 손을 낚아챘다. 기릭, 하는 마찰음이 들리고 라쳇의 얼굴 위로 의아한 표정이 떠올랐다.
「아이언하이드?」
상처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예전의 그 손을 떠올리며 아이언하이드는 말없이 라쳇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잠시 그 모습을 살피던 라쳇은 곤란하다는 듯 한숨을 쉬며 아이언하이드에게 잡혀있지 않은 다른 손으로 그의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이봐, 갑자기 왜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답지않게 울적해하지마. 멘탈케어는 내 전공분야가 아니라고.」
「여기서 쉬어라.」
「뭐?」
「내 방에서 쉬라고.」
하지만 처음엔 내 방으로 가라며. 덩치는 집채만한게 변덕 하고는.
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라쳇은 순순히 아이언하이드가 말하는 대로 그 방 안에서 쉬기 위해 자리를 잡았다. 사실은 자기 방까지 가는 것 조차 귀찮을 만큼 피곤하기도 했다. 익숙하게 방 안의 에너지케이블을 꺼내 몸에 연결하고 수면모드로 들어서려던 라쳇은 마지막으로 깍지를 끼듯 제 손을 잡고 있는 아이언하이드의 손을 바라보았다. 전공분야는 아니지만, 어쨌든 저 맞잡은 손이 갑작스러운 아이언하이드의 울적함을 퇴치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라며 오래간만에 갖는 달콤한 휴식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