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명의 혼례식과 피로연은 조촐했다. 들은 바에 의하면 공명은 그마저도 생략한 채 아내를 맞아들이려 한 모양이다. 하지만 공명을 아끼는 유비가 그렇게 두지 않았다.
피로연에서 조운은 평소보다 조금 과하게 술을 마셨다. 모두들 공명을 축하하며 왁자지껄 떠드는 와중에 누군가가 이제 조 장군도 장가를 가야 하지 않겠냐고 말을 걸었다. 쓸데없는 참견이라 생각하면서도 조운은 별 대꾸 없이 웃음으로 대답했다.
적벽의 싸움에서 조조에게 승리를 거둔 유비가 어느 정도 안정된 기반을 갖게 되자 유비의 가신들 중에서 아내를 맞지 않고 혼자 생활하던 조운에게도 몇몇의 혼담이 오갔다. 다분히 정략적이고 계산적인 혼담을 대하는 조운의 태도는 시종일관 심드렁했다. 그들의 수장인 유비조차 피해가지 못한 것이 정략결혼이었다. 그 심드렁함은 유비가 명한다면 어느 누구를 아내로 맞아도 상관없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유비는 조운에게 어떠한 혼담도 권유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언급조차 없었다. 서로를 볼모로 내어 주는 것이나 다름없는 위험을 떠안는 것은 자신 하나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어쩌면 마음에도 없는 이를 아내로 맞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유비는 늘 장비와 동향이 부부로 지내는 것을 기껍게 지켜보곤 했었다. 어쨌든 조운은 유비가 부하들에게 정략혼을 권유하지 않는 것에 대해 한편으로는 안도하고 있었다. 마음 한 자락 주지 않는 남편만 바라보며 일생을 사는 것은 여자에게도 그리 행복한 일은 아니리라.
어느새 가득 채운 술잔을 비우며 조운은 상석의 유비 근처에 붙들려 있는 공명을 보았다. 붉은 혼례복을 입고 있는 공명은 유비가 웃으며 따라주는 술을 받아 마시고 있었다. 그들의 군사는 아직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매사에 침착하고 차분한 태도를 보여 왔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어딘가 평소와 다르다. 물론 혼례날이니만큼 특별한 것은 당연하겠지만…….
목으로 넘어가는 술이 썼다. 그 쓴 맛이 싫어서 조운은 술을 즐기지 않았다. 물론 일찍 취해버리는 것도 술을 피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나리, 새신랑에게 그렇게 계속 술을 먹이시면 어떡합니까. 신방에 들어가 신부 혼례포도 벗겨주지 못하고 술김에 잠들어버리면 어쩌려고요. 간옹의 농담에 좌중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술기운에 시야가 조금씩 흐려지던 조운도 피식 새어나오는 웃음을 막지 못했다. 고개가 무겁게 아래로 떨어졌다.
“야, 자냐?”
“음….”
옆자리에 앉아있던 장비가 팔꿈치를 쳤다. 조운은 기우뚱한 고개를 어깨에 가누고는 조금 불분명한 발음으로 입을 열었다.
“군사 말이오.”
“군사가 뭐?”
“…아니, 그냥 평소랑 좀 달라 보여서.”
“그야 혼례날이니까.”
장비는 조운이 당연한 이야기를 한다는 듯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조운의 상태를 본 장비는 혀를 차며 조운의 반상 위에서 술잔을 치워버렸다. 어차피 더 마실 정신도 남아있지 않았기에 조운은 장비가 하는 것을 바라보기만 했다.
“왜, 군사가 장가가는 걸 보니 너도 동하냐?”
“동하긴 뭐가.”
조운이 어깨를 들썩이며 웃자 장비는 못마땅한 듯 혀를 찼다. 하지만 조운은 장비가 그 이상으로 참견하지는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술잔이 몇 순배 더 돌고, 이제 그만 새 신랑을 신부에게 보내줘야 하지 않겠냐는 주변의 질타 아닌 질타에 드디어 유비가 피로연을 파했다. 사람들이 하나 둘 연회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조운 역시 장비에게 팔을 잡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연회장을 나왔다. 가을바람이 소슬하게 뺨을 스쳤다. 술기운에 갑작스레 어지러워진 조운이 계단의 난간을 잡았다. 장비가 돌아보았지만 신경 쓰지 말라는 듯 손사래를 쳤다.
“술이 좀 깨거든 움직여야겠소.”
“그러게 술도 약한 놈이 왜 그렇게 과음을 했냐.”
“…좋은 날이니까……? 신경 쓰지 말고 가 보시오. 동부인께서 기다릴 텐데.”
손부인과 동향이 주관한 부인들의 다과회는 일찌감치 끝나 모두들 수레 안에서 남편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장비는 조금 못미더운 눈을 하다가 정 힘들면 이곳에서 자고 가라는 말을 했다. 그 조자룡이 술기운을 못 이기고 집에 돌아가다가 낙마라도 하면 두고두고 웃음거리가 될 거라면서. 조운은 웃으면서 손을 휘휘 내저었다.
장비마저 자리를 뜨자 조운은 계단 끝에 엉덩이를 붙이고 털썩 주저앉았다. 조촐한 피로연이었던 만큼 손님 수도 많지 않아 모두가 돌아간 듯 사위가 조용했다. 하지만 정작 수레에서 기다릴 신부와 함께 신혼집으로 가야 할 공명은 나오지 않고 있었다. 연회장에서 나오기 직전 본 공명은 사뭇 진지하게 유비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크게 숨을 들이쉬자 한순간 맑은 공기가 폐를 가득 채웠지만, 머리까지 맑게 해 주기는 어려운 것 같았다. 조운은 손등으로 이마를 괴고 다시 한 번 크게 심호흡을 했다.
형주 남부를 평정하고 군세가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들이 할 일은 여전히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손권에게서 친서가 왔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연회장 안에 남아있는 유비와 공명은 피로연이라고 왁자지껄 떠들며 웃고 마시던 조금 전의 시간이 무색하게, 아마도 공무에 관한 이야기하고 있을 것이었다. 조운이 알고 있는 유비와 공명은 그런 사람들이었다. 가정이나 가족보다는 머릿속에서 구상하고 있는 대업을 향한 일에 더 골몰하는 사람들. 아내를 끔찍이 아끼는 장비조차 가끔씩은 그런 면모를 보였다. 전장에서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가족과 떨어져 있는 시간 역시 길어졌다. 그들은 이제 막 첫 걸음을 내디딘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제 시작했을 뿐이니 끝을 말하기엔 일렀다. 그리고 그 끝을 이루는 과정에서 생겨날 예측하기 힘든 많은 일들, 공명은 그 모든 것에 관여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아마도, 문 밖의 수레에서 붉은 혼례포를 머리 위에 쓰고 신혼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새로 맞은 남편을 기다리고 있을 그 여인 역시,
“장군, 조 장군!”
누군가가 어깨를 잡아 흔들며 조운을 불렀다. 퍼뜩 정신을 차린 조운의 시야로 붉은 소매 끝이 아른거렸다. 조운은 반사적으로 눈앞의 것을 잡았다. 하지만 조운의 손에 잡힌 것은 소매가 아니라 소매 바깥으로 나온 손이었다.
“아….”
“설마 이런 곳에서 잠드신 것은 아니셨겠지요? 바람이 제법 차갑습니다.”
어정쩡하게 조운에게 손이 잡힌 자세 그대로 공명이 말했다. 그 말간 얼굴을 보며 조운은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다가 흐름이 끊겼는지를 되짚었다. 문 밖의 수레에서 이 사람과 함께 새로운 집으로 돌아가길 기다리고 있을 그 여인 역시, 남편과 얼굴을 맞대는 날 보다는 그저 기다리는 날들이 더 많을 것이라고, 그리고 그녀가 남편을 기다릴 시간동안 그녀의 남편과 함께 할 사람들 중에는 내가 있을 것이라고.
“조 장군?”
“아, 잠들었던 것은 아닙니다. 단지 술이 과해 잠시 정신을 차려볼까 하고 앉아있었습니다.”
조운의 말에 공명이 짧게 웃었다. 하긴, 그 조 장군께서 술에 취해 낙마라도 하셨다가는 두고두고 이야깃거리가 되실 테죠. 공명의 말에 따라 웃으며 조운은 잡고 있던 손을 슬그머니 놓았다. 공명은 손이 조운에게 잡혀있었던 것을 의식하지 못했다.
“그래도 찬바람을 맞고 계시진 마십시오. 내일부터 또 바빠지실 텐데,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이니까요.”
“공명님이야 말로, 어서 집으로 돌아가셔야지요. 먼저 가십시오. 저는 술이 거의 깼으니 잠시만 더 있다가 돌아가겠습니다.”
조운의 말에 공명은 잠시 망설이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을 끝까지 다 내려간 공명이 뒤를 돌아보고 작게 목례를 남겼다. 대문을 향해 걸어가는 발걸음은 평소처럼 차분했다. 그래도 그저 기다리는 것 보다는 나을 것이다. 공명이 가는 길과 자신이 가는 길은 늘 같을 테니까. 공명이 대문 밖으로 사라지고 나서야 조운은 겨우 소리 내어 웃으려 했다. 하지만 졸렬함에 목이 메어 그 웃음은 끝내 터져 나오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