깎아지른 벼랑길을 달려 당도한 비보. 지고했던 태산이 한순간 풍화되어 더 이상 그 굳건함이 존재하지 않음을 알게 된 순간 사지육신을 잘린 하늘의 비통한 땅울음이 울었다.
험준한 한중의 구석에서 서촉땅의 끝까지 그 땅울음을 들은 이들은 바람결 한 자락, 마른 풀 한포기 마저 지독한 비탄을 토해내지 않는 이가 없었다.
오군에게 사로잡혀 참수된 목은 위왕에게 진상되었다 하던가. 위왕은 그 목에 맞는 몸통을 맞춰 이미 극진한 장례도 치뤘다 하는데, 정작 그 장례를 모셨어야 할 못난 아들은 그 소식이 마냥 꿈인듯 느껴져 비탄의 눈물도, 통한의 절규도 뽑아낼 수 없었다. 아직도 이 눈 앞에는 지고의 태산이 우뚝 서 있는데, 날이 갈수록 더욱 굳건하고 흔들림 없이 자리하고 있는데 그것이 모두 허상임을 어찌 인정해야 할까. 이 몸의 근원이 그곳임에, 태산이 사라지면 뿌리 박을 곳이 없어 곧 쓰러질 아들일진데.
그렇게 홀린 듯 환상을 쫓다가 태산의 응달진 곳에 꺾여 있는 나무를 한 그루 보았더랬다.
늘 한 발자국 사양해 조용히 아버지의 뒤에 시립하던 의형. 자신이 디딜 땅은 한 뼘의 작은 응달이면 족하다던 아버지의 양자.
오군이 베어낸 목은 두 개였으나 위왕에게 진상된 목은 하나, 또한 최고의 예로 장례된 목도 하나. 그렇다면 아버지와 함께 쓰러진 의형의 몸은 이곳 서쪽 하늘에 소식도 전하지 못한 채 이 엄동설한 어드메에서 땅으로 돌아갈 수 조차 없게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더랬다.
그제서야 왈칵, 서러운 눈물이 흘렀다.
눈물을 흘리는 와중에도 태산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아, 아버지, 아버지.
그러하오니까, 아버지. 이 아들 앞에 계신 당신은 결코 환상이 아니오니다.
당신은 죽어 더 큰 태산으로 존재하게 된 것이 아니오니까. 당신의 굳은 절개, 산천을 떨게 했던 무용, 그 모든 것이 전설이 되어 더욱 당신을 크게 하리이다. 당신을 기억하는 이들이 비탄에 젖으면 젖을수록 더 많은 이들이 당신을 우러르게 되리이다. 이미 서쪽 땅의 만물들이 당신을 잃은 슬픔을 온 몸에 새기지 아니하였습니까. 그러니 당신은 억겁의 시간이 지난다 하여도 사라지지 않을 태산이 되리이다. 이 몸의 근원은 사라지지 않으리이다.
그러나 태산에 가려져 누구 하나 기억해주는 이 없는 의형의 설움은 어찌 하오리까.
가장 경애하는 양부의 적자라 하여 까마득 어린 동생에게 모든 것을 양보하고, 태산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나무가 되라며 다독여주었던 그 자애로운 손길을 이제야 떠올리게 된 이 우제의 죄를 어찌 하오리까.
그러하오니 아버지, 부디 이 아들이 오직 의형을 위해서만 눈물 흘리는 것을 용서하소서. 그리고 혹여 그 혼이 외롭게 구천을 떠돌고 있거든 붙잡아 가장 자랑스러운 아들이었노라, 위로해주소서.
형님, 이 동생은 형님께서 말한 대로 태산의 큰 나무가 되오리다. 우리 형제가 가장 닮고팠던 아버지에게 깊숙히 뿌리박아 흔들리지 않을 아름드리 나무가 되오리다. 형님의 설움까지 모두 묻어 튼튼한 가지를 뻗칠 터이니, 가끔 그 가지에 깃들어 어린 날 처럼 이 동생을 다독여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