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싸움
아침에 일어나 창을 열어보니 새하얀 눈이 소복히 쌓여 태양빛에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호오, 밤 사이 눈이 꽤 많이 내렸구나."
밤새 눈이 내린 날씨 치고는 바람이 그다지 매섭지 않다. 유비가 감탄처럼 내뱉은 말에 유비의 처소 앞에서 뜰로 이어지는 길의 눈을 치워내고 있던 병사들 몇이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유비에게 예를 취했다. 유비는 웃으며 손짓으로 그들에게 하던 일을 계속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한동안 느긋한 아침 경치를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바깥쪽 정원 한켠이 소란스러워졌다. 아웅다웅 하는 소리가 제법 크게 울려퍼지다가 작은 물체 두 개가 툭, 하고 유비의 처소 안뜰로 튀어들어왔다. 머리부터 온통 눈가루를 뒤집어 쓴 조카들이었다. 정신없이 놀다가 유비의 처소까지 들어온 줄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관흥이 던진 눈뭉치가 장포의 이마에 정통으로 맞았다. 유비는 창틀에 쌓인 눈을 모아 둥글게 뭉쳤다. 이 녀석들, 내가 있는 것도 알아채지 못하고 자기들끼리 노느라 정신이 없다 이거지? 유비는 장포가 던진 눈을 가볍게 피하고는 또 다시 장포를 도발하는 관흥을 향해 눈뭉치를 조준했다. 하지만 휙- 하고 작게 바람 가르는 소리를 내며 날아간 눈뭉치는 조준했던 관흥 대신 한순간 그 둘을 잡으러 뛰어온 관평의 콧잔등에 맞고는 바스러졌다.
"아…."
실수.
불의의 기습을 당하고 그 자리에 서버린 관평은 자신에게 눈뭉치를 날린 유비를 발견하고는 황급히 예를 취했다. 그때서야 두 어린 녀석들도 유비의 존재를 눈치채고 유비가 상반신을 내밀고 있는 창가로 달려왔다.
"백부님! 밤새 평안하셨습니까!"
"그래, 포야, 흥아. 너희들 목소리는 언제 들어도 우렁차구나."
유비가 손을 내밀어 아이들의 얼굴에 묻어있는 눈을 털어주며 웃었다.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관평이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주군. 잠시 눈을 뗀 사이에 이 녀석들이 주군의 처소까지 들어갈 줄은……."
"응? 아니, 상관없네. 못들어올 곳에 온 것도 아니고. 그런데 평, 자네는 언제까지 날 주군이라 부를텐가?"
"무슨 말씀이신지…?"
"끝까지 백부라 불러주지 않을 셈인가? 자네도 내 아우 관운장의 아들이 아닌가."
유비의 말에 관평은 아, 저 그것이… 하고 말을 잇지 못하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붉어진 얼굴을 보니 새삼 이 건실한 청년이 귀엽게 느껴졌다. 작은 녀석들은 그 새를 참지 못하고 또 다시 투닥거릴 기세다. 그 때 멀리서 조운이 이쪽을 향해 걸어오는 것이 유비의 눈에 들어왔다. 음, 언제 봐도 참 곧은 자세에 단정한 차림새다. 유비가 작은 녀석들을 끌어당기며 말했다.
"포야, 흥아, 가서 눈을 작게 뭉쳐 몇개만 가져다 주겠느냐?"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즐거운 일이 생길 것이라고 느낀 듯 잠깐 눈을 마주쳤다가 병사들이 한 켠에 쌓아놓은 눈무더기로 달려가 대여섯개의 작은 눈덩이를 뭉쳐 유비에게 가져다주었다. 아이들에게서 눈뭉치를 받은 유비는 조운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이보게, 자룡. 잠시 이쪽으로 오게나!"
유비의 부름을 들은 조운이 미소지으며 가까이 다가왔다. 조운은 관평과 아이들이 가볍게 인사하는 것을 받으며 입을 열었다.
"밤새 별 일 없으셨습니까, 주군."
"응, 별 일 있을게 뭐 있겠나. 일어나보니 온통 눈천지라 이 녀석들과 잠시 놀고 있었다네. 그런데 자룡, 조금만 더 가까이 와주겠나?"
유비의 말에 조운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유비가 서 있는 창가 가까이로 걸음을 옮겼다.
"무슨 하실 말씀이라……."
조운이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유비가 조운의 목에 팔을 감아 끌어안듯 잡아당겨 귓가에 속삭였다.
"자룡, 내가 주는 선물일세."
당황한 조운이 상황을 파악할 새도 없이 뒷덜미의 옷깃을 스치며 차가운 눈덩이들이 등의 맨살에 닿았다.
"#$^&%&#$&%(#$%^!!"
갑작스러운 유비의 공격에 조운은 제대로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한 손으로 창틀을 잡은 채 그 자리에 웅크려앉았다. 시린 눈들이 등줄기를 타고 녹아내렸다.
푸흡, 하고 참고 있던 웃음을 가장 먼저 터트린 것은 유비였다. 아이들은 쪼그리고 앉아 조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삼촌, 많이 차가워요? 그럼 빨리 녹여야겠다. 하며 (일부러 그런 것이 틀림없는 손길로) 조운의 등을 팡팡 내리쳤다. 걱정해주는 사람이라고는 오직 어쩔줄 모르는 목소리로 저, 괘…괜찮으십니까, 조장군? 하고 묻는 관평 뿐. 아직까지도 웃음을 그치지 않고 (빈말이 틀림없는 말투로) 미안하네, 자룡. 하고 말하는 유비의 눈꼬리에는 눈물마저 맺혀 있었다.
終